김동광 개인전(@kim_donggwang )
⌜표류하는 물결⌟
✨2023.11.28 ~ 12.10
✨갤러리아미디 [한남]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7가길 8-3
✨관람 시간 12:00 ~ 20:00
나는 성격도 급하고 욕심도 많았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재료나 방법들을 통해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해 보이고 싶었다. 선연습을 하며 필력을 쌓아 일필휘지로 산을 그리고 바다를 그리는 모습을 꿈꾸기 도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특별함이었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이길 수 있는 그림이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특별함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남들을 이길 수 있는 '좋은 그림'은 무엇 일까? 구상미술이 좋을까? 추상미술이 좋을까?, '재료는 유화? 아크릴? 아니면 더욱 특별한 다른 것?' 등 선을 긋는 시간 동 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좋았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하나씩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나'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듯했다. 4년 동안 선을 그으며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질문을 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이 이전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한 가지 방향에서 생각하면 맞는 것이어도 열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들이 생겼다.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은 하루에도 수십수백 개씩 생겨나는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부분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선연습을 하며 내가 실력이 늘어간다는 생각보다 나에게 실력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붓질이었지만 붓질 한 번 하기 위해 따져 물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나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고민과 의미가 나를 옥죄어왔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선을 그으며 느껴지는 무게감이 점점 커졌고 결국 붓질 속에 담기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 하고 선연습을 멈추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가로서 나의 인생에 가장 값진 보석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서 그저 버티고 있는 시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다른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작품을 하며 크고 작은 여러 전시에 참가하여 작품 활동을 하거나 회사에 취직하여 자신의 경력을 쌓고 있는데 나는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완성하지 못하는 그저 작업실에서 붓질만 하고 있는 작가도 무엇도 아닌 그저 그런 존재였다. 붓질을 해대는 것만이 내가 작가임을 증명하는 몸부림이었고 그런 꿈틀거리는 몸부림이 내가 아직 버티고 있음을 알렸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을 선연습으로 보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게 되었다.
나에겐 실패 같은 부끄러운 시간들이 나이가 들며 생각이 바뀜에 따라 그 시간이 점점 다르게 보인다. 20대의 나는 순수한 학 생이었다. 그림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하루 10시간씩 선을 그으며 답이 없음에도 치열하게 싸웠던 그림을 향한 순수한 열 정이 나에게도 있었다. 30대 초반의 나는 성과가 필요하였다. 남들과 비교하여 뒤처져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시간을 어 떻게든 포장하여 성과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30대 후반,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그때의 그 시간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일방적으로 그림을 사랑했을 뿐, '그림'이라는 수단 자체를 믿지 못하였다.
말로써 포장을 잘하는 이의 그림은 높은 가격에 판매가 되고 그렇지 못한 이의 그림은 저평가 되곤 한다. 그림의 형식보다 말 몇 마디에 그림의 가치는 쉽게 변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알 몇 마디에 가치가 바뀌는 '그림'이라는 수단을 신뢰하지 못하였고
'그림'을 믿지 못하니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 모두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꾸민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똑 같이 평가받을 수 있는 '절대적 가치'를 찾기 위해 선을 그으며 탐구하였던 것이다.
그토록 맹목적으로 선을 그으며 긴 시간 방황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찾던 가치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남들에게 말하는 내가 붓질하는 그럴싸한 이유들은 가짜라고 치부할 순 있지만 내가 붓을 잡고 하루 에 10시간씩 선을 그어댔던 시간들은 누가 뭐라 해도 진짜인 것이다.
캔버스 앞에서 허우적대며 고민하고 노력하며 쌓아 올린 시간의 두께야 말로 내가 찾았던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