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패배
2023.10.9 – 2023.10.15
이윤경 개인전
갤러리 아미디 [신촌]
전시 노트
유독 혹독했다. 겨울, 봄, 여름을 지나며 다시 가을이다. 고백처럼 다가온 전시에 머릿속에 일어난 작은 폭발들을 담아본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읽었다. 나의 그림들도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며 공허와 절박함과 위안이 혼재된 의식의 소산물이다.
아이를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시간들이 많다. 나는 늘 지나는 그 길들의 풍경에 찬탄을 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맨날 똑같은 풍경이라고 핀잔한다. 그때 나는 말했다. 지나가는 풍경은 똑같은 풍경이 아니야. 늘 다른 온도 습도로 꽉찬 공기로, 늘 다른 풍경이야라고. 내가 보는 매일의 풍경은 항상 나에게 다르게 달려들고 위 로가 되어준다. 나는 정말 매번 쉽게 감동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캔버스에 담는 풍경은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그 풍경들이 아니라 또렷한 느낌과 열망을 지닌 특정한 풍경들이다. 풍경은 매혹이며 이글이글 달려드는 열망이며 또한 심리적 해소가 일어나는 관념적 장이다. 특히 초록은 내게 커다란 매혹이다. 나는 초록에서 위안을 얻는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카이의 가슴에 박힌 거울 조각처럼 나는 나의 가슴에 차가운 얼음조각이 박히기를 원
했다. 나의 가슴은 너무 뜨거워져서 나는 얼음조각을 열망했다. 무지해서 무정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마음을 눌러야 견딜 수 있는 시간들을 견디며 그저 그리는 행위로 나의 패배의 시간들을 겪어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상은 마음의 상처와 유사한 프로세스를 갖는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찬물을 끼얹으면 살짝 불그스름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부위는 부풀어올라 물이 찬다. 그런 다음 부푼 곳이 터지고 검붉은 자욱으로 남아 선명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자취를 남긴다. 볼때마다 화상을 입었음을 상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물이 벗겨지고 그 자욱들이 사라져간다. 어느날 팔목 부근에 생긴 화상의 흔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작업은 어느 하루의 강력한 우울이며, 동시에 나를 살리는 위안의 행위이다. 나의 일상에서 나의 마음을 위안 하고 또 나의 마음을 소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회복의 과정이다. 부적응과 고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부적응과 고통에 의한 행위이고 감정의 기록이다. 어쩌면 나는 그림으로 시를 쓰고 있는 것일런지도...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말을 덧붙여본다.
■이윤경
작품 정보
전시 정보
갤러리아미디 [신촌]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로 21, 2층
|| 운영 시간||
12:00~18:00
나의 패배
2023.10.9 – 2023.10.15
이윤경 개인전
갤러리 아미디 [신촌]
전시 노트
유독 혹독했다. 겨울, 봄, 여름을 지나며 다시 가을이다. 고백처럼 다가온 전시에 머릿속에 일어난 작은 폭발들을 담아본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읽었다. 나의 그림들도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며 공허와 절박함과 위안이 혼재된 의식의 소산물이다.
아이를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시간들이 많다. 나는 늘 지나는 그 길들의 풍경에 찬탄을 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맨날 똑같은 풍경이라고 핀잔한다. 그때 나는 말했다. 지나가는 풍경은 똑같은 풍경이 아니야. 늘 다른 온도 습도로 꽉찬 공기로, 늘 다른 풍경이야라고. 내가 보는 매일의 풍경은 항상 나에게 다르게 달려들고 위 로가 되어준다. 나는 정말 매번 쉽게 감동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캔버스에 담는 풍경은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그 풍경들이 아니라 또렷한 느낌과 열망을 지닌 특정한 풍경들이다. 풍경은 매혹이며 이글이글 달려드는 열망이며 또한 심리적 해소가 일어나는 관념적 장이다. 특히 초록은 내게 커다란 매혹이다. 나는 초록에서 위안을 얻는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카이의 가슴에 박힌 거울 조각처럼 나는 나의 가슴에 차가운 얼음조각이 박히기를 원
했다. 나의 가슴은 너무 뜨거워져서 나는 얼음조각을 열망했다. 무지해서 무정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마음을 눌러야 견딜 수 있는 시간들을 견디며 그저 그리는 행위로 나의 패배의 시간들을 겪어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화상은 마음의 상처와 유사한 프로세스를 갖는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찬물을 끼얹으면 살짝 불그스름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부위는 부풀어올라 물이 찬다. 그런 다음 부푼 곳이 터지고 검붉은 자욱으로 남아 선명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자취를 남긴다. 볼때마다 화상을 입었음을 상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물이 벗겨지고 그 자욱들이 사라져간다. 어느날 팔목 부근에 생긴 화상의 흔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작업은 어느 하루의 강력한 우울이며, 동시에 나를 살리는 위안의 행위이다. 나의 일상에서 나의 마음을 위안 하고 또 나의 마음을 소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회복의 과정이다. 부적응과 고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부적응과 고통에 의한 행위이고 감정의 기록이다. 어쩌면 나는 그림으로 시를 쓰고 있는 것일런지도...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말을 덧붙여본다.
■이윤경
작품 정보
전시 정보
갤러리아미디 [신촌]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로 21, 2층
|| 운영 시간||
12:00~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