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제목 : 전지혜 개인전 < Sleepwalking>
전시 작가 : 전지혜
전시 기간 : 2022. 04. 25(월) - 2022. 05. 08(일)
전시 장소 : 갤러리 아미디 [아현] 다락2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31길 10
관람 시간 : 12:00 ~ 18:00
작가 노트 :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 혹은 개념을 보려합니다. 모든 것들의 이유 혹은 정의는 느끼는 주체만이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적 정의 즉 세상의 통념 그대로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왜 라는 질문으로 대상을 바라봅니다. 주로 영감은 모든 왜에서부터 오며 그렇게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빠르게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순간 바뀌는 생각을 그림에 옮기려면 스케치 혹은 빛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는 인상파주의 화풍으로 그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게 있어 저의 그림은 풍경화 같은 존재입니다.
다양한 재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재료 속에서 바뀌는 그림의 느낌과 기술들로부터 신선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캔버스 밖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디지털화 된 그림의 가치와 다양한 기술 속 관람자가 바라보는 예술은 무엇일지 늘 고민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무엇이 영원하며 어떤 것이 절대적인 예술이 될까라는 질문을 자주합니다. 이런 생각 속에 저 스스로 도전하며 어떻게 저만의 화풍을 만들어 갈지 늘 궁금합니다.
전시 노트 :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두 눈을 뜨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문득 이것이 꿈이 아님을 느끼고는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서서 ‘여기가 어디지?’ 라는 질문을 하였다.
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다. 잠이 들 때 꾸는 꿈, 간절하게 바라는 것 혹은 새로운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공간은 주체가 경험 했던 다양한 것들로 구성되어있다. 그것들은 무의식 흐름대로 움직이며 변해 간다. 이곳에 있는 것들은 오직 꿈을 꾸는 주체만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가상의 공간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가상공간 안의 주체만이 실제 본 세계이며 어찌 보면 환상 속 공간이니 꿈이야 말로 이미 존재했던 가상공간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는 질문 할 수 있다.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가상의 공간에서 느끼고, 보았던 것들이 실존 하지 않는 허구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낀 것인가.
허구라기엔 실존하는 것 같았던 모든 것이 가상의 존재라면 어떻게 우리는 현실을 구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눈을 감았고 그저 떴을 뿐이다.
나는 계속 살고 있었고 계속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있는 공간을 허구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계속 눈을 뜨며 살아가고 있는걸 아닐까.
몽유병은 꿈을 꾸지 않아도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있다.
몸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머릿속으론 다른 것을 생각을 하며 가다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것을 겪을 수 있다. 이렇듯 나는 몽유병을 자주 꾼다.
이 전시는 이러한 생각들에서 왔다. 실제 꿈속 과 꿈인것 같은 공간에서 본 환상을 그렸고,
꿈꾸는 도중 본 현실을 그렸다. 모두 허구의 존재일수도 혹은 실존하는 공간일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 공간 또한 꿈에서 본 것을 형상화하여 기획 했다. 눈부시게 밝은 공간 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
아무도 보지 못한 이 공간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신이 이 공간을 본다면 내가 본 것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님을 혹은 당신이 내 꿈 속으로 들어 온 것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전시 제목 : 전지혜 개인전 < Sleepwalking>
전시 작가 : 전지혜
전시 기간 : 2022. 04. 25(월) - 2022. 05. 08(일)
전시 장소 : 갤러리 아미디 [아현] 다락2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31길 10
관람 시간 : 12:00 ~ 18:00
작가 노트 :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 혹은 개념을 보려합니다. 모든 것들의 이유 혹은 정의는 느끼는 주체만이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적 정의 즉 세상의 통념 그대로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왜 라는 질문으로 대상을 바라봅니다. 주로 영감은 모든 왜에서부터 오며 그렇게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빠르게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순간 바뀌는 생각을 그림에 옮기려면 스케치 혹은 빛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는 인상파주의 화풍으로 그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게 있어 저의 그림은 풍경화 같은 존재입니다.
다양한 재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재료 속에서 바뀌는 그림의 느낌과 기술들로부터 신선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캔버스 밖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디지털화 된 그림의 가치와 다양한 기술 속 관람자가 바라보는 예술은 무엇일지 늘 고민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무엇이 영원하며 어떤 것이 절대적인 예술이 될까라는 질문을 자주합니다. 이런 생각 속에 저 스스로 도전하며 어떻게 저만의 화풍을 만들어 갈지 늘 궁금합니다.
전시 노트 :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두 눈을 뜨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문득 이것이 꿈이 아님을 느끼고는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서서 ‘여기가 어디지?’ 라는 질문을 하였다.
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다. 잠이 들 때 꾸는 꿈, 간절하게 바라는 것 혹은 새로운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공간은 주체가 경험 했던 다양한 것들로 구성되어있다. 그것들은 무의식 흐름대로 움직이며 변해 간다. 이곳에 있는 것들은 오직 꿈을 꾸는 주체만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가상의 공간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가상공간 안의 주체만이 실제 본 세계이며 어찌 보면 환상 속 공간이니 꿈이야 말로 이미 존재했던 가상공간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는 질문 할 수 있다.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가상의 공간에서 느끼고, 보았던 것들이 실존 하지 않는 허구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낀 것인가.
허구라기엔 실존하는 것 같았던 모든 것이 가상의 존재라면 어떻게 우리는 현실을 구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눈을 감았고 그저 떴을 뿐이다.
나는 계속 살고 있었고 계속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있는 공간을 허구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계속 눈을 뜨며 살아가고 있는걸 아닐까.
몽유병은 꿈을 꾸지 않아도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있다.
몸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머릿속으론 다른 것을 생각을 하며 가다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것을 겪을 수 있다. 이렇듯 나는 몽유병을 자주 꾼다.
이 전시는 이러한 생각들에서 왔다. 실제 꿈속 과 꿈인것 같은 공간에서 본 환상을 그렸고,
꿈꾸는 도중 본 현실을 그렸다. 모두 허구의 존재일수도 혹은 실존하는 공간일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 공간 또한 꿈에서 본 것을 형상화하여 기획 했다. 눈부시게 밝은 공간 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
아무도 보지 못한 이 공간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신이 이 공간을 본다면 내가 본 것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님을 혹은 당신이 내 꿈 속으로 들어 온 것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